제가 중학생이던 1980년대에는 학원을 다니는 아이가 많지 않았어요. 그 시절에는 사교육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도 아버지는 저의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며 학원을 두 곳이나 다니게 하셨어요. "네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먹고 살려면 이 두 가지 기술은 반드시 배워야 해!" 중학생 시절에 배운 그 기술은, 훗날 제 인생에 아무 쓸모가 없었어요.
"며칠 전 밤에, 술 취한 사람을 태웠는데 집에 다 왔는데 안 일어나는 거야. 자는 사람을 깨웠더니, 갑자기 욕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랬어요. '아이고, 점잖아 보이는 분이 왜 이러십니까.' 그러면 대개 머쓱해서 그냥 가요. 만약 내가 '너 나이가 몇이야?'하고 화를 냈으면 맞붙어 욕을 하겠지. 그럼 무조건 나만 손해야. 나보다 어린 손님에게 욕먹고 기분이 좋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어지간하면 화를 내지 않아요. 내가 보기에는 그게 최고의 장수 비결이야."
아이가 하나인데, 부모가 죽고 나서 혼자 외로울까 봐 걱정이라는 친구가 있어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야, 요즘은 부모가 90에 죽으면 자식도 나이가 60이야. 그 나이에 외로우면, 지가 인생을 잘못 산 거지, 어찌 형제를 낳아주지 않은 부모 탓이겠냐?" 100세 시대, 인생을 좀더 여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10대 20대에 공부하고, 30대 40대에 일하고, 50대 60대에 놀다가 간다.' 이렇게 20년씩 딱딱 끊어서 인생의 단계를 나눌 수 없어요. 100세까지 사는 인생이므로 나이 칠팔십에도 일을 해야 하고, 오륙십에도 공부를 새로 해야 합니다. 일과 공부와 놀이가 돌고 도는 순환의 삶을 사는 시대거든요.
어느 날, 쇼 프로그램 연출의 대가이신 신종인 부장님이 저를 찾으셨어요. "너, 동시통역대학원 나왔다 그랬지? 저거 통역 좀 해봐라." TV에서는 1998년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이 방송되고 있었어요. 그즈음에는 국내 채널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을 생중계하는 곳이 없어서 부장님은 AFKN으로 보고 계셨지요. 그러다가 답답하니까 인간 통역기를 동원하신 거예요. 예능 조연출은 시키면 뭐든 합니다. "잘하네? 넌 통역사를 하지 MBC에는 뭐하러 들어왔냐?" 그래서 말씀드렸죠.
X축에 시간을 들인 만큼 Y축의 실력도 정비례해 올라가면 좋겠지만, 영어 실력은 계단식 그래프를 그리며 올라가더라고요. 아무리 공부해도 실력이 늘지 않아 답답하기만 한데, 질적인 변화는 금세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양이 쌓여야 질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양질 전환의 법칙이 영어 공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영어 고수로 불리는 사람들은 대개 그 첫 번째 계단을 오르는 순간, '이거구나!' 하는 희열을 맛본 다음에 공부에 재미가 붙었다고 말합니다.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포기하진 마세요.
"기독교 신앙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성경 한 권 얻을 수 있겠습니까?" '호, 이런 기특한 신병을 봤나' 하는 흐뭇한 얼굴로 군종병이 문고판 성경책을 주더군요. "기왕이면 성경 말씀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습니다. 영어로 된 성경책을 빌려주십시오." 그래서 영한 대역 성경책을 한 권 얻었습니다. 작업하다 쉬는 시간에 남들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 피우는 동안 저는 한구석에 앉아 영어 성경을 읽고 외웠습니다. 방위병 막내가 토플책을 보다가 걸렸다면 엄청나게 맞았겠지요. 하지만 아무도 저를 건드리지 않더군요. 흔히들 군대 고참은 하느님보다 높다고 하는데, 고참도 하느님은 무서운가 봐요.
CNN 뉴스를 틀어놓고 공부하면 아는 단어만 들리고 모르는 단어는 죽어도 안 들립니다. 테러리즘, 파리스, 프레지던트 등 언뜻언뜻 들리는 단어 몇 개로 내용을 추리하고는 CNN 뉴스의 70퍼센트를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건 제대로 된 영어 공부가 아닙니다. 자신이 정말 CNN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면 뉴스를 받아쓰기해보세요. 자신이 써놓은 문장이 말이 되면 제대로 들은 거죠. 그렇지 않다면 CNN 청취로 영어 공부 하지 마세요. 시간과 정력만 낭비하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기초 회화를 들으며 따라 하고 외우시는 편이 낫습니다.